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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부두술사

레어용병 특수
무덤에서 온 그대여 나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부두술사는 아직 아물지도 않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매일 강제 노역을 당하는 노예로 살고 있습니다.
고된 노역과 잠시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는 채찍질로

하루하루 짐승보다도 못한 삶을 살고 있는 부두술사에게

희망이나 목표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 입니다.


그래도 부두술사가 버티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부두술사처럼 같이 끌려온 다른 사람들과 토착종교에 의지할 수 있어서 입니다.

감시의 눈을 피해 잠시 동안이라도 종교의식을 거행하는 부두술사와 동료들은

그 시간이 유일한 행복 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예들을 감시하던 교관이 종교의식을 행하고 있는 부두술사와 사람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혼비백산하며 도망가려 했지만, 이미 그 곳은 도망갈 곳이 없는 꽉막힌 부두술사와 사람들의 숙소였습니다.
모진 채찍질에 살갗이 터지고 피가 낭자하며 그저 옅은 신음만 뱉고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더 이상 정신이 버티기 힘들 때 부두술사의 동료 한명이 괴성을 지르며 교관에게 돌진했습니다.

그는 종교의 사제로 추앙됐던 사람으로 자신을 비롯한 동료들이 받는 학대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맹렬하게 달려든 그 사람은 교관의 허리를 잡고 밀어내려고 힘껏 다리에 힘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교관은 그렇게 녹록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단숨에 그 사람의 목덜미를 잡더니 물건처럼 내동댕이 쳤습니다.

바닥에 내려쳐진 충격에 신음을 뱉던 그 사람을 흘깃 쳐다본 교관은

잡고 있던 채찍을 내던지더니 단단한 군화로 그 사람을 밟아대기 시작했습니다.
부두술사와 동료들은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였습니다.

몇 분간 가혹한 폭행이 이어진 후 교관은 바닥에 침을 뱉으며 숙소를 나갔습니다.
그제서야 부두술사와 부두술사의 동료들은 그 사제에게로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 사제는 숨이 끊어진 후 였고, 어떠한 미동도 있지 않았습니다.


태어나 처음 죽음과 마주해본 부두술사는 떨리는 손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슬픔과 분노를 큰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나지막한 울부짖음만을 낼 뿐이었습니다.

웅크린 채 굳어버린 사제의 시신을 온전한 자세로 고쳐주며 성불을 기도하는 부두술사는
두 눈을 지그시 감고 혼란스런 마음을 추스렸습니다.


바로 그때, 사제의 시신에서 영롱한 빛이 나기 시작했고

그 빛은 형상이 되어 부두술사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턱시도를 입은 해골의 모습을 한 그 모습은

부두술사의 종교에서 정령으로 인식하는 '로아'였습니다.

그 로아의 이름은 "바롱 삼디"로 죽음, 삶, 부활을 관장하는 로아로써

사제의 죽음을 인도하기 위해 나타났으며,
영적인 힘이 강한 부두술사에게만 그 모습이 보여진 것이였습니다.
바롱 삼디는 부두술사를 흘깃 쳐다보더니 곧바로 사라졌습니다.

어안이 벙벙한 부두술사는 휘둥그레한 표정을 하며

로아가 있었던 곳을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며칠 뒤, 부두술사는 여느 때처럼 노역에 시달리며 고된 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사제의 죽음 이후에 종교의식은 행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나마 있었던 행복도 없는 피폐한 삶이였습니다.

덥고 습한 날씨까지 겹치면서 부두술사의 피로와 스트레스는 극한에 다달았고

결국 노역 중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교관은 달려와서 부두술사에게 채찍질을 했지만

고통을 느끼지도 못할만큼 부두술사의 몸은 이미 망가져 있었습니다.

미동도 없는 부두술사를 보던 교관은 혀를 차더니

부두술사의 동료들을 시켜 땅속에 묻어버리라고 명령했습니다.


아직 숨이 붙어있는 부두술사를 묻으라는 지시에 부두술사의 동료들은 교관에게 따지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고, 결국 부두술사의 팔, 다리를 들고 노역장을 나와서 평지로 향했습니다.

구덩이를 파며, 부두술사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리던 부두술사의 동료들은

어떻게 해야할 지 망설였지만 채찍질로 길들여진 노예의 근성때문에

명령을 따르고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땅속으로 들어가며 차가운 흙속에 갇혀버린 부두술사.

흙속에서 움직일 수도 없고 숨을 쉴수도 없게된 부두술사는 무의식 상태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무의식 상태에서 부두술사는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그곳에는 저번에 보았던 로아, 바롱 삼디가 시가를 물고 있으면서 부두술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직감한 부두술사는 깊은 한숨을 한번 내쉬더니 오히려 희망없는 삶보다는
이 죽음이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위로 했습니다.


바롱 삼디는 부두술사에게 럼주가 담겨있는 잔을 말없이 건네면서

피부없는 해골 턱을 움직이며 둔탁한 소리를 흘렸습니다.

이 잔을 마시면 영원한 죽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부두술사는

조금은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들면서 한 모금 목으로 넘겼습니다.


하지만 부두술사의 생각과 다르게 그 잔은 죽음이 아닌 부활의 잔이였고
흙 속에서 알 수 없는 힘과 함께 힘껏 손을 뻗어 흙 속에서 나왔습니다.

이전과는 다른 강한 힘이 느껴지는 부두술사는 곧바로 노역장으로 향했습니다.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노역하고 있는 다른 노예들과

구타로 사망한 사제의 모습이 연달아 떠오르면서
부두술사는 이 힘으로 노예들을 해방시켜야 겠다고 생각 했습니다.


몸에서 흘러 넘치는 힘을 개방하자 땅속에서 부두술사의 하수인들이 하나 둘씩 기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시체의 모습을 하고 있는 부두술사의 하수인들은 부두술사가 생각하는 대로 움직였고

금새 노역장을 점령했습니다.

노예를 관리하는 교관부터 노역장의 주인, 기타 부두술사와 동료들을 학대했던 모든 사람들을 공격하고
그들도 부두술사의 하수인으로 만들어버린 부두술사의 힘은 놀라웠습니다.


하수인이 된 학대자들을 터트려버린 부두술사는 동료들에게 추앙받으며 해방의 환호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동안의 고난과 역경이 물밀듯이 들어오며 복잡한 감정이 뒤섞이고 있을 때

부두술사는 갑자기 정신을 잃으며 쓰러지게 되었습니다.


한참 뒤 눈을 떠보니 부두술사는 노역장이 아닌 생소한 곳에 있었습니다.


이 곳은 어디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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