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과양땅에 과양생이 부부가 살았습니다. 그 여인에게 세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들이 장원급제하여 한림학사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과양생이 부부는 금의환향한 아들들을 위해 잔칫상 을 차렸고 온 마을 사람들을 불러서 자랑하기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세 아들이 과양생이 부부에게 절을 하며 차례로 죽어버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들들이 눈앞에서 갑작스럽게 죽어버리자 과양생이 부부는 김치고을 원님인 김치원님에게 달려가 아들들이 죽은 원인을 밝혀 달라고 애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원님은 도통 그 이유를 알아낼 수 없었고 과양생이는 부부는 매일매일 온 고을에 원님의 욕을 하고 다녔습니다. 이에 원님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부하 중 제일 뛰어난 강림도령을 보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강림도령을 저승에 보낼 마땅한 명분이 없어 고민하던 김치원님에게 과양생이가 묘책을 하나 제시하였습니다. "새벽에 갑자기 소집하면 그 자가 늦게 올 터이니 죄를 물어서 보내면 되지 않겠 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김치원님은 과양생이의 말대로 새벽에 부하들을 소집하였습니다.
그러나 하필이면 그 날이 강림도령의 열여덟 번째 장모의 생일이라 늦게까지 술판을 벌이고, 각시들의 자는 얼굴을 보고 관청에 가자 강림도령이 제일 늦게 도착했습니다. 원님은 커다란 작두를 꺼내오라 불호령을 내렸고 강림도령을 포승줄에 포박하였습니다. 이에 강림도령은 "무슨 일이든 할 테니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라고 애원하였습니다.
김치원님은 강림도령에게 저승에 가서 염라대왕을 잡아오라고 명했습니다. 강림도령은 목숨을 건지기 위해 무턱대고 알겠다고 해 풀려날 수 있었지만, 저승에 갈 방법조차 알 수 없어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강림도령은 큰 각시에게 찾아가 자조치종을 설명하며 각시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염라대왕 잡아오기는 어렵지 않소"라고 말한 뒤 큰각시가 백미를 연 삼십 번 곱게 빻아서 흰 시루떡을 세 쪽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한 쪽은 부엌신인 조왕신에게 올리고 한쪽은 후원에 단을 뭇고 기도하며 떡 한쪽은 강림도령을 주며 하는 말이 "이 떡을 가지고 발 가는 대로 계속 가면 알 도리가 있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강림도령이 발 가는대로 가다 보니 한 노파가 앞서서 가고 있었 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노파를 쫓아갈 수 없었습니다. 노파는 강림도령 집의 조왕신이었고, 그녀는 강림도령에게 "연제못에서 목욕재계 후 정성을 다해 떡을 올려 기도하고 있으면 세 신선이 내려올 테니 그때 알 도리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고 사라졌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세 신선의 도움으로 강림도령은 염라국으로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승에 내려가 염라대왕이 지나다닌다는 지옥문 앞에 적배지를 붙인 후 기다리다 염라대왕이 나오자 열두 사자를 메다꽂고 순식간에 염라대왕의 가마 줄을 붙잡아 메었습니다.
"이승사자 강림이가 염라대왕을 잡으러 왔습니다." 고함을 지르자 "고약하다, 나를 잡아갈 자가 어디 있느냐"하니, 천지 요동하고 세상이 캄캄하여 천지분별 못하여 무섭기 그지없었습니다. 강림도령이 가만히 정신을 진정하고 생각하니 "저승에도 관장, 이승에도 관장, 관장은 마찬가지입니다. 저승관장이라도 이승관장 명령도 들어야 합니다"라고 하니 "가히 맹랑하기 짝이 없구나! 그말도 틀린 말은 아니니 내가 가마"라며 염라대왕은 강림도령의 용맹함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지금 원복장이 굿 잔치에 가는데 같이 가지 않겠느냐?"라고 염라대왕이 꼬시니, 일이 일사천리로 해결 되어 느긋해진 강림도령이 "그럽시다"하고 염라대왕과 함께 굿 잔치에 갔습니다.
그곳에는 온갖 신이 다 모여있고 원복장이가 모든 신령에게 술을 올리는데 강림도령의 술만 없었습니다. 한낱 인간이라고 얕잡아 보는 거냐며 강림도령은 원복장이를 포승줄로 묶어버리고 화를 내었습니다. 그러자 원복장이가 누릇누릇 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놀란 원복장이 아내가 강림도령에게도 술을 주어 포승줄을 풀자 원복장이가 다시 파릇파릇 살아났습니다. 화가 풀린 강림도령이 주위를 둘러보자 염라대왕이 사라졌습니다. 이에 놀라 주변을 살피다 우연히 부엌에서 수군거리는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인간 세상의 사자 강림이라는 자는 어리석구나. 대들보가 하나 늘어나도 모르다니" 과연 엉뚱한 곳에 대들보 하나가 더 세워져 있었습니다.
"이보시오 원복장이, 이 집의 기둥은 몇 개이오?" 원복장이가 여든 여덟이라고 말했습니다.
강림도령이 "헌데 내가 세어보니 여든아홉이더구나. 필요 없는 기둥이 하나 늘어났으니 답례로 내가 베어주마"
강림도령이 톱을 들고 달려들었더니, 기둥으로 변했던 염라대왕이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이만하면 나를 불러갈 만하구나. 내 다음날 오후에 너희 나라 관청 마당에 내려설 테니 먼저 가 기다려라" 라고 말하며 흐뭇해 했습니다.
"그렇거든 증표나 남겨주시오"
염라대왕은 강림도령의 등에 저승 글을 써주고 저승 글을 쓴 붓을 바닥에 꽂으니, 장승의 입이 벌어지면서 염라대왕이 강림도령을 그 입안으로 던졌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강림도령은 이승 땅에 누워있었고, 그 옆에는 장승장식이 달린 붓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강림도령이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니 큰 각시가 상을 차려놓고 빌고 있었습니다.
"설운, 강림도령 살아있다면 바삐 오시고 죽었거든 제사음식 많이 드십시오"
"각시! 내가 돌아왔소!" 강림도령은 저승에 3일 있었을 뿐인데, 어느새 3년이 흘러있었다고 합니다. 강림도령은 각시와 정답게 그동안의 일을 이야기하며 회포를 풀었습니다.
강림도령이 돌아온 것을 발견한 과양생이가 김치원님에게 달려가 가라는 저승은 안가고 큰 각시 집에 살림을 차린 것 아니냐고 고자질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김치원님은 강림도령을 잡아들였습니다.
"네 이놈! 감히 내 말을 안 듣고 살림을 차렸다!?"
"내일 염라대왕 대령하오리다"
"이놈, 헛말만 하는구나! 이놈을 잡아 가두거라!" 라며 강림도령을 감옥에 투옥했습니다.
다음날이 되자 천지가 요동하고 남쪽과 북쪽에 번개가 번쩍이고 세상이 캄캄하더니, 염라대왕 일행이 관청으로 들어왔습니다. 염라대왕의 군사가 강림도령을 찾아 감옥에서 풀어주었고 김치원님은 두려움에 몸을 떨었습니다.
"크흠! 저런 놈이 나를 부른 것이냐. 그래,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는고?"
김치원님이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그러하냐? 나는 이미 알고 있다"하시며, 과양생이를 불러라 명했습니다. 다음날, 염라대왕이 내려와 관청에 온 과양생이를 보고는 "저놈을 잡고, 그 처도 잡아오라!"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어데 묻었느냐?"라고 염라대왕이 물으니 "큰놈은 앞 밭, 둘째는 뒷밭, 셋째는 옆 밭에 묻었습니다" 그러나 세 밭의 묘를 다 파보니 시체는 없고 허수아비가 대신 덩그러니 놓여있었습니다.
"네 아들들의 시체가 있는 곳을 알으켜주마. 동네 입구의 연제못의 물을 퍼 봐라"라고 하여 그 말대로 연못물을 모두 퍼냈습니다.
그러자 연못 바닥에 3형제의 시체가 있었고, 과양생이 처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습니다. 염라대왕이 그들을 부활시켜 과양각시가 부모가 맞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닙니다! 저들은 전생의 우리가 갖고있던 재물이 탐나 우리를 죽이고 이 연못에 시체를 던져 숨긴 뒤 우리들의 재물을 취한 원수들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버물왕의 삼 형제이다. 모두 너희 부부에게 원한을 품고 아들로 환생한 것이다! 네 아들 죽은 것은 애간장이 타도록 아프고 남의 아들 죽이는 것은 즐겁더냐?"
삼 형제는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염라대왕이 과양생이와 과양각시의 사지를 묶어 거열형에 처하게 했습니다. 찢어진 몸을 방아에 빻아 바람에 날리니 살아서 남의 피를 빨아먹던 버릇이 어디 안 가고 모기와 각다귀 몸으로 환생했습니다.
일이 모두 해결되자 고을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김치원님이 강림도령의 공을 치하했습니다. 그러자 염라대왕도 앞다퉈 강림도령의 영민함과 용맹함을 칭찬하며 강림도령을 탐냈습니다.
"이보시오 강림이 무척 탐이 나는데 내가 데려가 더 요긴하게 부리는 게 어떻겠소?"
"안 됩니다! 그는 제 수하입니다! 줄 수 없습니다"
김치원님이 무서움을 무릅쓰고 단호하게 말을 하자, 염라대왕이 잠시 생각하더니 의문스러운 웃음을 지었습니다.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낀 강림도령이 말을 하려는 찰나.
"그렇다면, 반으로 나누는 건 어떤가? 육신은 자네가 갖고 영혼은 내가 갖는 건 어떤가?"
"…좋소"
그러자 염라대왕이 강림도령의 머리카락 3개를 뽑고는 사라졌습니다.
"저승에 갔던 이야기 좀 해보게나" 김치원님이 섭섭해하는 어투로 강림도령에게 저승이야기를 채근했지만 염라대왕이 즉시 강림도령의 영혼을 데려간 탓에 그 몸은 송장이 되어버렸습니다.
염라국으로 다시 되돌아온 강림도령이 염라대왕에게 따져 물었습니다. "제 일인데 어찌 제 의사는 묻지도 않으시고 멋대로 구십니까!" "네 등의 증표를 보라" 하고 염라대왕이 등 뒤를 비쳐주자, 살아서는 읽지 못했던 글귀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강림의 청을 들어주는 대신 그를 저승사자로 임명하며, 그가 이 글을 쓴 증표를 받으면 이 계약이 성립된다]
라고 쓰여있었습니다.
"…사..사..사기입니다!" "네가 증표를 달라 하지 않았누? 어찌 됐던 너의 청도 들어주었고 너의 이승의 상관인 김치원님도 동의했으니 무를 수도 없게 됐다. "
"그..그.." "넌 아직 나 따라오려면 멀었다 이놈아. 너는 오늘부터 이승에서 혼을 잡아오는 '저승사자'이니라"
"그렇다면 내가 대왕의 수하들을 전부 제압했었던 적이 있지 않소? 대장이라도 시켜주시오!"
"껄껄껄! 역시 너의 맹랑함은 누구도 따라올 자가 없구나. 좋다! 너는 염라사자이니라. 사자중 으뜸이지!" 그리하여 강림도령은 염라사자로 적배지에 이름이 적힌 죽은 영혼을 잡으러 다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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