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원한 서린 길 | |||||
작성자 | 대령4괴담 | 작성일 | 2020-02-28 00:26 | 조회수 | 1,0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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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님이 투고해 주신 이야기입니다. 친구가 대학교에 다닐 적에 답사를 갔다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당시 친구는 진주 쪽에 다른 친구 몇 명과 함께 교수님을 따라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 크지는 않은 마을이었지만, 친구 일행은 마을 노인정에 들어가 노인 분들의 이야기를 취록하게 되었습니다. 보통 노인정에서 취록을 하면 그 마을에서 옛날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나 유래, 서낭당이나 장승, 하다못해 산이나 저수지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습니다. 민속학 연구를 하고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기회도 없는 셈이지요.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 마을 분들은 이야기를 꺼리셨습니다. 대부분 취록은 학생들 단계에서 끝나기 마련이었지만, 결국 그 날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교수님이 직접 나서서 부탁하셨다고 합니다. 그러자 마을 어르신 중 흰 수염을 길게 기르신 분 한 분이 머뭇거리며 입을 여셨다고 합니다. 그것은 오래 전에 이 마을 근처에서 [목격 되던 것] 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새마을 운동과 농촌 개량 운동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 아직 지붕이 슬레이트가 아니라 기와와 초가로 이루어질 무렵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1차선 도로가 나 있는 마을 어귀에는 본디 갈림길이 있어서, 왼쪽 길은 산 속으로, 오른쪽 길은 마을로 가는 길이었다고 합니다. 길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길은 아니었고,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 만들어진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어귀는 대낮에도 나무들이 무성하고 길게 금줄이 쳐진데다, 어두컴컴해서 혼자는 다니지도 못할 정도로 오싹했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들짐승들조차 나다니지 않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을 어른들도 아이들에게 그 곳을 지나갈 때는 혼자서 다니면 절대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셨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대낮에도 출몰하는 [그것] 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이 귀신인지, 도깨비인지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끔 심한 악취가 나며 벌레조차 울지 않을 때가 오는데, 그 때는 정말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를 해 주신 할아버지가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던 것은 이승만 대통령이 막 권좌에서 물러날 무렵이었다고 합니다. 마을 어르신들의 당부를 한낱 헛된 것으로 생각하던 할아버지는 동네 젊은이들과 내기를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읍내에서 다른 이들이 시국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 혼자 빠져나와 집에 따로 가셨다는 것입니다. 친구들은 먼저 집으로 갔고, 잠시 읍내에서 머물다 출발한 할아버지는 마침내 마을 어귀까지 오셨다고 합니다. 처음으로 혼자 마을 어귀를 지나가는 것이었기에 많이 긴장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그럼 그렇지.] 하는 마음으로 의기양양하게 발걸음을 재촉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뒤쪽에서 바람결을 따라 악취가 풍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누가 밭에 둘 퇴비라도 삭히나보다 생각하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등 뒤에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돌아보면 안 된다, 돌아보면 안 돼!] 라고 생각하며 후들거리는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고, 마침내 잘 움직이지 않는 발로 달리기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다 문득 할아버지께서는 뒤를 돌아보셨습니다. 뒤에서는 마을로 난 길 바깥쪽 풀숲에서 무엇인가가 마구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점점 풀숲에서 나와 길로 다가오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도 겁이 난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고, 마침내 그것이 풀숲에서 뛰쳐나오는 순간 그만 까무러치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 후 할아버지가 정신을 차리신 것은 사라진 할아버지를 찾기 위해 마을 어른들이 톳불을 들고 온 한밤 중이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그것까지만 말하고 입을 닫으셨습니다. 친구는 계속 다음 이야기를 물었지만, 할아버지는 진저리를 치시며 생각하기도 싫다고 이야기를 꺼리셨고 아예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그 당시 할아버지와 내기를 했었다는 다른 할아버지께서 이야기를 이어서 해 주셨습니다. 당시 그 할아버지는 너무 놀라서 정신을 잃었던 것이었기에 읍내의 병원에 갔다고 합니다. 병원에서는 정신적으로 너무 놀라서 그렇다며 안정을 취하라는 말만 하고 별다른 처방은 하지 않았고,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의 말처럼 할아버지는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후에도 할아버지는 그 날 보셨던 것에 관해 결코 이야기 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새마을 운동으로 신작로가 나고, 일차선이기는 해도 포장된 도로가 깔리면서 마을 어귀의 갈림길이 사라지자 가장 속시원해 하던 것은 바로 그 할아버지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즈음에야 술 한 잔 기울이면서 그 때 할아버지가 봤던 것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가 보셨던 것은 시커먼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온 몸이 완전히 썩어서 온통 검었고, 썩은 몸에서는 악취가 진동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다리는 썩어서 떨어진 것인지, 허리까지만 남은 몸을 팔로 ** 듯 기어서 할아버지를 따라오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할아버지를 기절초풍하게 만들었던 것은 눈이었습니다. 이미 썩어서 눈알은 떨어지고 퀭하니 눈구멍만 남은 그 눈이. 분명히 할아버지를 향해 똑바로 바라보며 ** 듯 기어오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자 학생들 뿐 아니라 교수님까지 모두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 마을에서의 답사를 마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답사를 마치고 시내버스에 올라탄 채 터미널로 향하면서, 학생 중 한 명이 교수님에게 그것의 정체를 물었습니다. 그 때 마침 버스에 타고 계시던 나이 지긋한 비구니 스님께서 이야기에 끼어드셨습니다. [어디 마을이라구요? 지금이야 별 이름도 없지만, 옛날에는 유명했지요. 일제 시대 전인가? 옛날에 그 마을에서 큰 돌림병이 돌았어요. 마침 그 때 가뭄도 겹쳤답니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병까지 도니까, 병에 걸린 사람들을 모아다가 산에다 버리고 마을에 금줄을 쳤었다는 거죠.] 그 때 돌아가신 분들의 공양을 스님의 절에서 하고 있기에, 그 때 이야기는 아직도 전해내려와 잘 알고 있다는 말씀이셨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듣자 [과연...] 이라며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무슨 말인지 궁금해하자, 교수님께서는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자네들 집에 가면 조선 말, 고종 14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 번씩 찾아들 보게나.] 성격 급한 친구 몇몇은 바로 그 자리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을 하기 시작했고, 곧이어 마른 침을 삼켰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친구들 역시 그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1877년(고종 14년), 삼남지방 대기근, 역병 창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