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1년 처음 건조되었을 당시의 메리 셀레스트호 그림. 당시에는 아마존호라고 불렸다.
<불운한 선박 아마존 호>
1861년 캐나다의 스펜서 섬에서 한 척의 범선이 건조되었습니다. 무역선으로 건조된 이 배의 이름은 "아마존"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배는 항해가 참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처녀항해에서 충돌사고가 난 것입니다.
이 충돌 사고는 어찌 보면 별 것 아니었습니다. 어선과 충돌해서 선체 일부가 좀 파손된 수준이었으니까. 그러나 처녀항해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는 어쩌면 이후 계속될 불행을 암시하는 전주곡이었던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배를 수리하기 위해 항구에 갔다놨더니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겨우 항해를 재개했더니 이제는 선장이 출항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선장을 수장시키려고 관을 바다에 던졌는데... 관에 매단 줄이 재수없게 항해사에게 엮이는 바람에 항해사도 같이 수장당했습니다.
불운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세번째 항해 때는 다른 배와 충돌해서 부딪친 다른 배가 침몰해버렸고, 네번째 항해에서는 캐나다의 케이프 브레턴 섬을 지나다 암초에 걸려 좌초되었다가 구조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쯤 되면 아마존 호는 최고의 불운함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그 악운은 100년후 최고의 행운함이라고 불렸던 어떤 군함과는 참 비교될 정도입니다. 어째 두 배가 서로의 운을 바꾼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마존과 달리 정말로 행운만이 따라다녔던 "불침함" 유키카제.
그러다 이 배는 1868년 미국인 선주 윈체스터에게 팔렸다. 윈체스터는 이 배의 밑 부분 일부가 썩어있는 걸 보고 구리판을 깔고 갑판의 선실을 길게 하는 등의 일련의 개조를 단행합니다. 그리고 "아마존"의 악운을 떨쳐내고자 아예 배 이름을 "메리 셀레스트"로 바꿔버립니다. 그리고 1872년. 윈체스터는 경험이 풍부한 벤자민 브리그스 선장을 이 배의 선장으로 임명하고 항해를 떠나게 합니다. 목적지는 이탈리아의 항구도시 제노바. 운반하는 물품은 알콜이었습니다. 이제 이 배는 무사히 제노바에 도착하기만 하면 되는거였습니다. 그런데....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1872년 12월 4일 혹은 12월 5일 영국 상선 디 그라티아 호가 아조레스제도와 포르투갈 사이의 북대서양 해역을 항해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들은 이상한 배를 발견하였습니다. 이 배는 뱃머리의 삼각돛대와 앞 돛대의 스테이세일만을 펼친 상태로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디 그라티아호에서는 이 배에 신호를 보냈지만 묵묵부답. 그러다 이 배가 "메리 셀레스트"라는 것을 알아내게 됩니다. 선장인 모어하우스는 그 배의 선장 벤자민 브리그스를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고 이 일을 수상쩍게 생각했습니다. 결국 선장인 모어하우스는 일등항해사 올리버 데보로 하여금 몇몇 선원들을 이끌고 저 수상쩍은 배에 승선, 조사를 하라고 명령합니다.
올리버 데보와 그의 일행들은 이 배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몇 가지를 알아냈는데 그것이 정말 괴이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일단 배에는 훗날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 제목마냥 아무도 없었던 상태였습니다. 선장도, 선원들도, 그리고 배에 같이 탑승한 선장의 아내와 2살난 딸도 모조리. 즉 이 배는 유령선이었던 것이지요. 더군다나 항해일지는 11월 25일까지만 기록되어있던 상태였습니다. 즉 11월 26일에 무슨 사단이 났었고 그 이후 이 배는 9~10일간 사람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표류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일들이 없던 건 아니기에 보통 생각할 수 있던 것은 유혈사태나 항해 불능으로 배를 버렸을 가능성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습니다. 도끼 자국과 더럽혀진 칼, 피자국이 약간 발견되었기에 유혈사태 가능성이 있기는 했지만 피자국은 정말 약간이라 유혈사태가 있었다고 보기는 힘든 수준이었고 배 상태가 깔끔한지라 그 이외의 다른 유혈사태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무엇보다 6개월치 식량과 물, 그리고 화물인 알코올은 1차 조사 기준으로 모두 멀쩡한 상태였습니다.
배 안에 물이 가득차있었고 물펌프 3개가 모두 꺼내져있던데다가 나침반 등의 주요 항해도구가 모두 고장나거나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더군다나 한 척 있어야 할 구명정도 사라졌고요. 이렇게 되면 항해불능이라고 볼 수도 있었지만 당시 메리 셀레스트호의 항해 자체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던 수준이었습니다. 더군다나 항해도구 같은 건 유령선이 되버린 후에 고장났을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올리버 데보는 이 배를 지브롤터로 인도하여 해난구조료를 받자고 모어하우스 선장에게 제안했고 모어하우스 선장은 내키지는 않았지만 해난구조료를 받기 위해 동의. 두 배는 6일 후 지브롤터에 입항합니다. 그러나 해난구조료는 커녕 지브롤터의 영국 당국에 의해 메리 셀레스트호는 억류되고 조사를 받게 됩니다.
영국 당국은 보험사기를 강하게 의심했습니다. 디 그라티아호의 모어하우스 선장과 메리 셀레스트호의 벤자민 브리그스 선장은 서로 막역한 사이였고 출항 전날 뉴욕에서 같이 식사한 것도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나 배의 문제로 받는 보험료가 배를 파는 돈보다 더 싸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보험사기의 가능성은 사라집니다. 애초에 너무 완벽하게 사람만 사라지는 것도 힘들고요. 결국 "원인불명"으로 판정이 납니다.
<그 이후>
선주 윈체스터는 이 말도 안되는 사건을 겪은 후에 바로 배를 처분했습니다. 그리고 이 배는 여러 주인을 거치는데 자꾸 사고가 나서 팔리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이 배는 13년간 17명의 선주들을 거쳤고 그 과정에서 완전히 고물이 되버리고 맙니다. 결국 마지막 선장인 파커 선장은 이 배를 보험사기의 대상으로 삼기로 결정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또 생깁니다. 이제는 이 배가 전혀 침몰하지 않는 거였습니다. 아무리 암초에 몰아넣어도 배가 멀쩡한 거였습니다. 하기사... 9~10일간 선원 한 명도 없이 항해하던 배인데 암초에 일부러 몰아넣는다고 침몰하겠습니까만...
결국 이제는 불을 질러보기로 하는데 불 지르고 남은 잔해는 여전히 꿋꿋이 바다에 떠있었습니다. 결국 파커 선장은 침몰을 포기하고 있지도 않은 화물을 가지고 보험금을 청구하지만 들통이 나고 재판받는 신세가 됩니다. 그런데 재판 받기도 전에 파커 선장이 죽어버립니다. 그리고 이 배는 대양 한가운데에 버려지게 됩니다.
한편 메리 셀레스트호가 실종되었을 당시 영국에는 손님이 하나도 없어서 파리만 날리고 있던 의사가 있었습니다. 오죽 손님이 없으면 이 의사는 세무사한테 "난 손님이 없어서 수입이 없고 따라서 세금 낼 돈이 없다"고 하고 세무사가 납득을 하는 지경이었습니다. 이렇게 시간만 남아돌던 이 의사는 메리 셀레스트호 이야기를 접하고 남는 시간을 활용해 메리 셀레스트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제이 하버쿡 젭슨의 증언"이란 추리 소설을 써 히트를 칩니다. 워낙 히트를 친 나머지 이 소설이 묘사한 광경이 실제 메리 셀레스트호 수색 당시의 상황이라고 오해되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의 히트를 바탕으로 이제 그는 다른 추리소설에도 손을 대기 시작합니다. 그의 이름은 바로 셜록홈즈를 쓴 그 유명한 추리소설가 아서 코난 도일이었습니다.
내가 저 소설로 히트 좀 쳤지. 흐흐흐"
<그들이 사라진 이유>
이 사건은 워낙 괴기하기에 그 원인에 대해 여러가지 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위에서도 그 중 몇가지 설을 소개했지요. 하지만 그 이외의 다른 설들도 소개해보겠습니다.
1. 외계인들의 납치 : 그냥 썰일 뿐. 하도 기괴하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2. 돌고래 : 선장의 어린 딸이 돌고래 구경을 좋아해 메리 셀레스트호에는 나무 베란다가 설치되어있었다고 합니다. 거기에 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가 무게를 이기지 못해 무너지면서 전원 수장됬다는 가설입니다. 그런데 선원들에게 돌고래가 그닥 신기한 것인지도 의문이고... 보통 선원들 몇 몇은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정상입니다.
3. 일확천금 : 1916년 자메이카를 들렀던 어떤 선원의 주장입니다. 이 선원은 자메이카에서 메리 셀레스트호의 선원이었다는 노인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 노인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우연히 표류하는 선박을 만났는데 그 배에는 황금이 엄청 실려있었고 선원과 선장 모두 전**으로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이들은 그 황금을 가지기로 하고 배를 옮겼고 그 과정에 배에 실려있던 나무통을 뜯어 그 안의 알콜로 배를 소독한 후 그 배로 모두 옮겨탔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지브롤터에서 원인불명 판정을 받고 제노바에서 화물을 하역할 때 붉은 떡갈나무 통에 있던 알콜들이 모두 사라지고 흰 떡갈나무 통의 알콜들만 멀쩡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설대로라면 식량과 물을 가져가지 않은 것이 의문으로 남습니다.
4. 해적 : 위에서 서술한 유혈사태와 비슷한 건데 해적들. 특히 바르바리 해적들이 그들을 습격했다는 가설입니다. 그러나 바르바리 해적 자체는 19세기 초 미국 등 서구 열강들의 대대적인 공세와 1830년 프랑스의 알제리 점령으로 거의 사라진 상태인데다가 선박 상태가 상당히 깨끗한 편이라 거의 의미없는 가설입니다.
5. 폭발 : 붉은 떡갈나무로 만든 통은 하얀 떡갈나무로 만든 통보다 액체를 쉽게 머금는 성질이 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붉은 떡갈나무 통은 알콜 원액을 머금었고 그러다 통에 있던 철제 밴드끼리 서로 마찰하면서 열을 일으키고, 애초에 폭발 온도가 엄청나게 낮은 에탄올이 그 충격으로 순간적으로 폭발. 배가 폭발하는 걸로 착각한 선장과 선원, 선장의 가족들이 모두 대피했는데 배는 멀쩡한 상태로 유유히 떠나갔다는 이론입니다. 실제 2005년의 실험에서 나무통을 그슬리지 않고 에탄올이 폭발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됬다고 합니다.
6. 유독가스 : 알콜을 머금은 통에서 유독가스가 발생하였고 안되겠다 싶은 선장과 그 가족, 선원들은 잠시만 대피하기로 하고 구명정과 배를 밧줄로 묶고 구명정으로 대피했는데 하필 로프가 끊어지거나(혹은 풀어지거나) 해서 배는 유유히 떠나가고 구명정에 있던 사람들은 서서히 죽었다는 가설입니다.
7. 폭풍우 : 5,6번과 비슷한 가설로 폭풍우가 몰아치자 브리그스 선장은 알콜의 폭발 가능성을 우려, 사람들을 구명정에 대피시켰는데 배와 구명정 사이의 밧줄이 끊어지거나 혹은 밧줄로 잇는다는 것을 잊어먹는 바람에 배 자체는 멀쩡했지만 구명정의 사람들은 비바람이 삼켜버렸다는 이론입니다.
이 외에도 환각 등등 많은 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1953년 대서양의 어느 무인도에 표류됬다가 구조된 프랑스 선원들이 자신이 표류한 무인도에서 브리그스란 이름이 쓰여진 이름표가 꽂힌 옷을 입은 해골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일도 있었습니다만 확인되지는 않았습니다. 이렇게 원인이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메리 셀레스트호는 호사가들의 입을 아직도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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