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무슨날? 한글날~!
본명 | 이도(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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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 | 자 : 원정(元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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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 | 장헌(莊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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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전주(全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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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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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조선조 제4대 임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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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관계 | 아버지 : 태종(太宗) 어머니 : 원경왕후 민씨(元敬王后 閔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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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 훈민정음,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네이버 지식백과] 세종대왕 [世宗大王] (한글글꼴용어사전, 2000. 12. 25.,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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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제4대 임금. 성은 전주 이씨(全州李氏), 이름은 도(?), 자는 원정(元正), 존시는 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 시호는 장헌(莊憲), 묘호는 세종(世宗), 능호는 영릉(英陵). 태종(太宗)의 셋째 아들, 어머니는 원경왕후(元敬王后) 민씨(閔氏), 비(妃)는 심온(沈溫)의 따님인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 태종 8년(1408) 충녕군(忠寧君)에 봉해지고, 태종 12년(1412) 충녕대군(忠寧大君)에 진봉, 태종 ***(1418) 음력 6월 맏형 양녕대군(讓寧大君) 제(?)가 폐세자(廢世子) 됨에 따라 왕세자(王世子)로 책봉되었다가 같은 해 음력 8월 22세의 나이로 태종의 양위를 받아 경복궁 근정전(勤政殿)에서 즉위하였다.
세종 2년(1420) 집현전(集賢殿)을 확충, 궁중에 설치하여 학자를 키우고, 학문을 숭상하며, 옛 제도를 연구 검토하게 함으로써 정치와 문물제도를 정리하여 행정체제를 확립하였다. 역사, 지리, 정치, 경제, 천문, 도덕, 예의, 문자, 운학, 문학, 종교, 군사, 농사, 의약, 음악 등에 관한 각종 저서를 하게 함으로써 문화 생활에 막중한 지침서가 되게 하였다.
한편 주자소(鑄字所)를 설치하여 새 활자를 만들고 판짜기를 개량하여 인쇄 능률을 올렸는 바, 새로 주조한 활자는 동활자인 경자자(庚子字), 갑인자(甲寅字)와 납활자인 **자(丙辰字)와 효시의 한글 활자가 그것이며, 이 중 갑인자와 한글 활자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활자들이다.
세종 15년(1433) 천체측각기인 혼천의(渾天儀)와 간의(簡儀), 물시계인 자격루(自擊漏)를 만들고, 세종 16년(1434) 해시계인 앙부일구(仰釜日晷)를 발명하고, 세종 23년(1441) 강우량 측정기인 측우기(測雨器)와 하천수(河川水)를 재는 수표(水標)를 발명하였으며, 천문, 역서(曆書)인 《칠정산내외편(七政算內外篇)》과 《제가역상집(諸家曆象集)》을 펴냈다. 그 중 측우기의 발명은 이탈리아 사람 베네데토 카스텔리(Benedeto Gastelli)의 측우기(1639)보다 거의 200년 앞선 세계 최초의 것이다.
화전(火箭), 화포(火砲)를 개량하여 우리 나라 무기사상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도량형(度量衡)의 고정(考正) 실시로 물량거래(物量去來)의 공정을 기하고, 경제적인 정책을 비롯한 여러 가지 정책상의 제도 마련 기준에 공헌하였다. 《농사직설(農事直說)》을 편찬 반포케 하여 농업 발전에 기여하고, 조세제도(租稅制度)를 정할 때 온 백성의 민의를 파악하기 위하여 먼저 전국 8도의 관민(官民)에게 공법(貢法)에 대한 가부를 조사(민주적 여론조사)하는 한편, 전제상정소(田制詳定所)를 설치하여 종래에 모순이 많았던 조세제도를 연분구등(年分九等), 전분육등(田分六等)의 54등급으로 확립 실시하여 조선조 5백년 간의 조세제도를 확립하였다.
의료기관을 정비하고, 《향약채취월령(鄕藥採取月令)》,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의방류취(醫方類聚)》 등의 의서를 편찬하여 향약(鄕藥)을 개발함으로써 의료 활동의 합리화를 기하였다. 죄수(罪囚)들의 건강을 염려하여 감옥 시설을 개선해 주는 한편, 남형(濫刑)을 금하고 억울하게 죽는 이가 없게 하기 위하여 삼심제도(三審制度)인 삼복법(三覆法)을 실시하였고, 배태법(背胎法)을 둔태법(臀笞法)으로 바꾸어 등과 같은 인체의 중요 기관을 치는 고문을 엄금시키었으며, 법의학서(法醫學書)인 《신주무원록(新註無寃錄)》을 편찬 발간함으로써 인명치사(人命致死)의 사건이 생겼을 때에는 살상 검증(殺傷檢證)에 관한 검시(檢屍)의 제도를 실시하게 되니, 형정(刑政)에 획기적 발전을 보게 되었다.
15세 미만인 어린이와 70세가 넘는 늙은이는 살인죄나 강도죄가 아니면 가두지 못하게 하고, 10세 이하와 80세 이상인 이는 사형에 해당되는 죄를 범했더라도 가두지 못하게 하였으며, 천민인 노비(奴婢)를 하늘이 낸 백성으로 인정해 주었다. 관비(官婢)의 출산 휴가를 대폭 늘려 주었다.
세종 25년(1443) 친히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 이에 대한 자세한 풀이를 집현전 학사 등에게 하게 하여 만든 해설서인 《훈민정음》이란 책을 만들어 이와 함께 세종 28년(1446)에 반포하고,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석보상절(釋譜詳節)》을 짓게하고, 운서인《동국정운(東國正韻)》, 《홍무정운역훈(洪武正韻譯訓)》 등을 편찬 발간하게 하는 한편 스스로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을 지어 내기도 하였고, 한문으로 된 경서(經書)와 문학서 및 불경(佛經)을 번역하게 하였으며, 또 이과(吏科)와 이전(吏典) 시험에 [훈민정음]을 시험 과목으로 정하는 등 훈민정음 보급에 크게 힘썼으니, 우리 문자 생활에 일대 혁신을 가져오게 하였다.
박연(朴堧)을 시켜 향악(鄕樂)과 아악(雅樂)을 짓거나 정리하고, 편경(編磬)과 편종(編鐘) 등의 악기(樂器)를 제작하게 하였으니, 정간보(井間譜)의 창안은 동양 최초의 유량악보(有量樂譜)이고, 《세종악보(世宗樂譜)》는 우리 아악의 연총(淵叢)일 뿐 아니라 동양의 고전 음악 연구에 절대적인 자료이다.
역사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고려사(高麗史)》 등을 편찬하고, 《효행록(孝行錄)》과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를 지어 풍속을 권려하였고, 《명황계감(明皇誡鑑)》을 지어 후세에 제왕의 일락(逸樂)을 방지하고자 하였고, 《자치통감훈의(資治通鑑訓義)》와 《치평요람(治平要覽)》을 엮어 흥망 성쇠를 본받도록 하였고, 《역대병요(歷代兵要)》를 엮어 전쟁을 잊지 않도록 하였다. 전주 출척(銓注黜陟)의 법이 지극히 정밀하고 잘 갖추어져 현량(賢良)이 등용되었다.
종교에 있어서도 유교를 장려하여 도의 정치를 구현하는 한편 세종 6년(1424)에는 불사(佛寺)를 정리하여 선종(禪宗), 교종(敎宗) 36사(寺)만을 남겨 불도(佛道)를 정하게 닦도록 하였으며, 세종 30년(1448)에는 경복궁 안에 내불당(內佛堂)을 짓고, 불교 서적의 국역 간행 배포와 과거 승과(僧科)를 설치하는 등 불교 발달에 노력하여 유교와 불교 내지 도교(道敎)가 조화된 찬란한 문화를 이룩하게 되었다.
세종 원년(1419) 이종무(李從茂)로 하여금 대마도(對馬島)를 토벌하게 하여 항복을 받음은 물론 경상도에 예속시켰고, 세종 15년(1433)에 최윤덕(崔閏德)에게 명하여 파저강(婆猪江) 일대의 야인들을 토벌하여 사군(四郡)을 설치하고, 세종 16년(1434)에는 김종서(金宗瑞)로 하여금 동북 변경 지방의 여진(女眞)을 토벌하여 육진(六鎭)을 설치함으로써 동북과 서북쪽의 땅을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확장, 우리 강토의 방비를 튼튼히 하는 한편, 나라안의 지리(地理)를 조사하게 하여 지리지(地理志)를 편찬하게 하고, 실측지도를 제작하게 하였으니, 그것이 정척(鄭陟)과 양성지(梁誠之) 등에 의해서 세조 9년(1463)에 편찬된 [동국지도(東國地圖)]이다. 이렇듯 세종은 겨레 생활을 존중하는 모든 제도의 완성을 이루어 국태 민안 문화 찬란의 황금 시대를 이룩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세종대왕 [世宗大王] (한글글꼴용어사전, 2000. 12. 25.,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이외에 만드신것들 지정종목 | 국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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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번호 | 국보 제7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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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일 | 1962년 12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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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 | 간송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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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로 102-11(성북동 97-1) 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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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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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분류 | 목판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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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 | 1책[네이버 지식백과] 훈민정음 [訓民正音] (두산백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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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70** 지정되었다. 목판본으로 2권 2책이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간송미술관(澗松美術館)에 소장되어 있다. 책으로서의 훈민정음에는 "나라말씀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않으니…"라고 한 《훈민정음예의본》과, 글자를 지은 뜻과 사용법 등을 풀이한 《훈민정음해례본》이 있다.
전자에 대해서는 《세종실록》과 《월인석보(月印釋譜)》 첫권에 같은 내용이 실려 있어 널리 알려졌으나, 후자에 대하여는 1940년 발견될 때까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한글의 형체에 대하여 고대글자 모방설, 고전(古篆) 기원설, 범자(梵字) 기원설, 몽골문자 기원설, 심지어는 창살 모양의 기원설까지 나올 정도로 구구한 억설이 있었으나, 이 책의 출현으로 모두 일소되고 발음기관 상형설(象形說)이 제자원리(制字原理)였음이 밝혀졌다.
후자는 예의(例義)·해례(解例)·정인지 서문 등 3부분 33장으로 되었는데, 예의는 세종이 직접 지었고, 해례는 정인지(鄭麟趾)·박팽년(朴彭年)·신숙주(申叔舟)·성삼문(成三問)·최항(崔恒)·강희안(姜希顔)·이개(李塏)·이선로(李善老) 등 집현전(集賢殿) 학사가 집필하였다. 정인지가 대표로 쓴 서문에는 1446년 9월 상순으로 발간일을 명시하고 있어, 후일 한글날 제정의 바탕이 되었다.
1940년까지 경상북도 안동군 와룡면(臥龍面) 주하동(周下洞) 이한걸가(李漢杰家)에 소장되었던 해례본은 그의 선조 이천(李?)이 여진을 정벌한 공으로 세종으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었다. 이 책이 발견되어 간송미술관에 소장되기까지에는 김태준(金台俊)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발견 당시 예의본의 앞부분 두 장이 낙장되어 있었던 것을 이한걸의 셋째 아들 용준(容準)의 글씨로 보완하였다. 용준은 안평대군체(安平大君體)에 조예가 깊었으며, 선전(鮮展)에 입선한 서예가였다.
낙장된 이유는 연산군의 언문책을 가진 자를 처벌하는 언문정책 때문에 부득이 앞의 두 장을 찢어내고 보관하였다고 하며, 이를 입수한 전형필은 6·25전쟁 때 이 한 권만을 오동상자에 넣고 피란을 떠났으며, 잘 때에도 베개 삼아 베고 잤다는 일화가 전한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훈민정음 [訓民正音] (두산백과) 앙부일구(仰釜日晷)는 조선 세종 때 처음 만들어진 대표적인 해시계이다. 조선시대 말기까지 지속적으로 제작·보급된 이 해시계는 오목한 솥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앙부일구(仰釜日晷)라는 이름도 그러한 형상에서 비롯한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앙부일구 (한국 미의 재발견 - 과학문화, 2004. 12. 31., 솔출판사)
두 개의 앙부일구 중 큰 것은 청동으로 만들어 흑칠(黑漆)을 하였으며, '漢陽北極高三十七度二十分 仰釜日晷 冬至~夏至(24節候 寅, 卯, 申, 酉, 戌)'라고 새겨져 있어 1713년(숙종 39) 이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고, 12시 96각(刻)의 시제(時制)에 의한 것에서 1654년(효종 3) 이후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의 어느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작은 것 역시 청동으로 만들어 흑칠을 하였으며, '漢陽北極高三十七度三十九分一十五秒仰釜日晷 冬至~夏至 寅, 卯, 申, 酉, 戌'이라고 씌어 있어, 1713년 한양의 북극고(北極高)가 서양의 도법(度法)에 의하여 측정된 이후 18세기 전반무렵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 지식백과] 앙부일구 (한국 미의 재발견 - 과학문화, 2004. 12. 31., 솔출판사)
앙부일구 시간을 재는 장치 중에서 인류가 가장 먼저 이용한 것은 해시계이다. 가장 초보적인 해시계는 수직으로 세워 놓은 막대기가 만들어내는 그림자의 위치로 시간을 알아내는 것이다. 고대 문명이 발달했던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중국과 같은 곳에서 해시계를 이용해 시간을 쟀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까지 신라 시대의 해시계가 가장 오래된 유물로 남아있지만, 여러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나 백제에서도 해시계를 관리하도록 했다는 내용이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앙부일구는 조선 세종대왕 때 만들어진 오목한 솥단지 모양의 해시계이다. ‘앙부’는 하늘을 우러러보는 모양의 가마솥이라는 뜻이고, ‘일구’는 해시계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 앙부일구는 ‘가마솥이 위로 열려져 있는 모양의 해시계’라는 뜻이다.
앙부일구는 해 그림자를 받는 시반과 해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영침, 시반을 받치고 있는 받침대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시반에는 시각선과 절기선이 그어져 있는데, 시각선을 통해 하루 동안의 시각을 알 수 있고 절기선을 통해 24절기, 즉 날짜를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앙부일구 외에도 현주일구, 천평일구, 정남일구, 일성정시의, 신법지평일구, 간평일구, 혼개일구 등 다양한 형태의 해시계가 만들어졌다. [네이버 지식백과] 해시계 (한 권으로 끝내는 교과서 실험관찰 5·6학년, 2011. 3. 18., (주)북이십일 아울북)
http://tvcast.naver.com/v/297404 자격루 영상입니다 >^<
이것은 처음보는것 같군요 그런데 있습니다!
1438년(세종 20) 1월에 완성되어 경복궁 안 흠경각(欽敬閣)에 설치하였다. 그 구조를 보면 흠경각 안에 호지(糊紙)로 높이 7자[尺] 가량의 종이산을 만들고 거기에 태양의 모형을 비롯해서 옥녀(玉女) ·사신(四神) ·사진(司辰) ·무사(武士) ·종인(鐘人) ·고인(鼓人) ·징인(鉦人) ·십이신(十二神) 등의 인형을 배치하고, 옥루의 기륜(機輪)을 설치하여 물이 떨어지는 힘으로 기륜이 회전되면서 이들 인형이 북 ·종 ·징 등을 쳐서 시각과 경(更) 등을 알리게 하였다. 또한 오위(午位:午時에 해당하는 위치)의 앞에 있는 대(臺) 위에 장기(裝器)를 놓았는데 그것은 물이 흘러들어가 그릇이 비면 기울고 반쯤 차면 수평이 되며, 엎어지도록 하여, 이 모든 기관이 사람의 힘을 빌지 않고 자동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종이산의 사방에는 농촌 사계절의 광경을 계절마다 그려 세웠고 인물 ·오수(烏獸) ·초목의 모양을 나무에 새겨 절후마다 해당되는 것을 진열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옥루 [玉漏] (두산백과)
진짜로 많은걸 하셧네요 ㅎㅎ 이글에 악성댓글다는 당신! 절싫어하시는군요.. ㅜㅜ(시무륵...)
이때까지 제가 다른분들한테 욕한건 사과드림니다만 시비나 실력없단느 말씀 하시지말아주세요 ㅎㅎ 저는 몬던을 잘돌아서 계급만 소령입니다 그러니 양해부탁드리고 낚시나할랍니다~ 그럼모두 즐로~ 헤헤 이사진 아껴뒀징
오늘의교훈:욕하지말자! ㅎ 그런데 여기에 비속어나 욕설이 검색됀데요 ㅜㅜ 이글올리면 욕먹을지 모르겠네요..그래도 오늘은 한글날이니까 한번 해보겠습니다
퍼와서 죄송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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