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2월 14일이 무슨 날인가 | |||||
작성자 | 대위3내가창조신 | 작성일 | 2012-02-13 21:17 | 조회수 | 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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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安重根, 1879.9.2~1910.3.26] 대한제국의 교육가, 독립운동가, 대한의병 참모중장이다. 본관은 순흥, 고려조 명현 안향의 26대손이다. 1905년 조선을 사실상 일본의 보호국으로 만든 을사조약이 체결된 것에 저항해, 독립 운동에 투신한 그는 1909년 10월 26일에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사살했다. 어려서 안응칠(安膺七)이라는 아명으로 불렸으며,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그의 세례명은 사도 성 토마스의 이름을 딴 토마스였다. 그래서 안중근 토마스(혹은 도마 안중근)라고도 불린다. 생애 황해도 해주부 수양산 아래에서 현감 안인수의 손자이자 진사 안태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천주교 성당건축에 참여할 정도로 독실한 신앙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안중근 자신도 1895년 천주교학교에 입학하여 신학과 프랑스어를 배웠다. 1904년 평양에서 석탄장사를 하다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는 것을 보고 1905년 조선을 사실상 일본의 식민지로 만든 을사조약이 체결된 것에 저항해,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이어 삼흥학교를 세우고 돈의학교를 인수해 교육에 힘쓰다 1907년 연해주로 건너가 의병에 가담하였다. 이토 히로부미 저격 1909년 10월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 제국의 재무장관 코코프체프와 회담하기 위해 하얼빈에 오게 되었다. 하얼빈 역 전 역인 채가구 역, 창춘 역에서도 우덕순과 조도선, 유동하의 암살 계획이 있었으나, 각각 철통 같은 수색과 역장의 의심으로 인해 실패하였다. 안중근 이전에도 안양에서 원태우가 돌을 던져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려 시도했으나 실패한 적이 있었다. 안중근은 하얼빈 역 기차에서 내리는 이토 히로부미를 브라우닝제 반자동권총 M1900으로 저격하였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영웅 안중근의사님의 사형 선고일입니다 . 초콜릿만 먹지말고 묵념도 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