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헬렌켈러 이야기 | |||||
작성자 | 상사3SIeep | 작성일 | 2011-03-25 23:37 | 조회수 | 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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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19개월 후 당시 성홍열이나 수막염이라 생각되는 병을 앓아 위장과 뇌 에 심한 출혈이 생겼다. 병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그 결과 시각과 청각을 잃 고 말았다. 7살까지는 약 60개가 넘는 수화를 만들어 가족과 대화를 할 수 있 게 되었다. 1886년 어미니인 케이트 켈러는 찰리 딕킨스의 에 나온 시청각 장애인 로라 브링맨의 성공적인 교육에 대한 글을 읽고 감동 해서, 조언을 얻으러 볼티모어의 특수 의사를 찾아갔다. 그녀는 당시 청각 장 애인 치료 전문강이자 전화 발명가인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을 만났는데, 벨은 보스턴에 있는 펄킨스 시각 장애를 가진 졸업생 앤 설리번을 특수 교육선생님 으로 맞이하게 된다. 이것이 헬렌켈러와 설리번의 49년간의 관계의 시작이었다. 시작장애인 특수학교의 보스턴 퍼킨스 학교의 뉴옥 라이트-휴머슨 학교에 졸 업한 헬렌은 16세의 나이에 하버드대학교 부속학교인 래드클리프 대학교에 입 학했다. 1904년 대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독일어를 비롯해 5개의 언어를 구사했 으며, 미국 역사 최초로 학사 학위를 취득한 시청각 장애인이 되었다. 전보적 사회운동 헬렌 켈러 이라고 하면 흔히 설리번 선생의 인내와 사랑으로 장애를 극복한 장애 인 여성으로 생각하지만, 역사 속의 헬렌은 전보적 사회운동을 실천한 사회주의 지식인이 었다. 헬렌켈러는 29세 때인 1909년 미국 사회당(영어: Socialisf Party of America,1901년 창당)에 입당하였으며, 공개 서한 <나는 어떻게 사회주의자 가 되엇나> 발표와 방송 출연을 통해 자본주의를 비판했다. 또한 미국의 월슨 대통령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세계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독일에 선전포고한다." 라고 선언하자, "(미국 백인들이) 수많은 흑인을 학살하는 상황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지배자는 세계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할수 있는가?" 라는 비판으로 우드로 월슨 대통령의 도덕주의(Moralism)가 얼마나 표리부돌 한지를 신랄하게 비판할 정도로 헬렌 켈러는 미국 사회의 문제점을 직설적으로 고발 했으며, 여성 참정권 운동, 사형 폐지 운동, 아동 노동과 인종차별 반대 운 동을 실천했다. 그녀가 이러한 활발한 사회참여에 대해 보수주의 언론들은 "헬렌 켈러가 누군가에게 조종당한다." 라며 비난 했는데, 이에 대해 헬렌은 "나는 노동자를 착취하는 공장, 빈민가에도 방문했다. 볼수는 없었을 지라도... 냄새는 맡을 수 있었다." 라며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사회참여를 하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헬렌켈 러의 사회참여에는 한계가 있었는데, 바로 자신이 당원으로 활동한 미국 사회당 의 분열을 막지 못한 것이다. 당시 미국 사회당은 1913년 1월, 11만 당원 중 2만 명이 별 헤이우드 집행위원에 대한 제명 조치에 반발, 탈당할 정도로 엄청난 내분 을 겪고 있었다. 이에 대해 헬렌 켈러는 일치하여 민중의 편을 들어야 할 사회당 이 두 파벌로 갈라져 서로 비열한 싸움을 벌인다고 비판했지만, 결국 내분을 막 지 못했다. 하지만 헬렌켈러는 명언과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시각과 청각을 잃 어도 꿈을 잃지 않고 미국역사 최초로 학사학위를 취득했다. 헬렌켈러의 명언 "고개 숙이지 마십시오.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십시오" 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처럼 헬렌켈러 같이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노력하면, 성 공할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