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로사란 이런거입니다 | |||||
작성자 | 소위4맞다보니황천 | 작성일 | 2010-07-02 11:13 | 조회수 | 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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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사 [1586. 4. 20/30~1617. 8. 28] 요약 가톨릭의 성녀. 페루 리마에서 태어났다. 시에나의 가타리나 성녀를 모범으로 삼아 어린 시절부터 단식과 고행을 했다. 도미니쿠스회에 들어갔으며 자기 집 방 하나를 진료소로 만들어 아이들과 노인들을 돌보았다. 원어명 Rosa of Lima 본명 이사벨 데 플로레스(Isabel de Flores) 국적 페루 활동분야 성녀 출생지 페루 리마 본문 축일은 8월 23일이다. 1586년 4월 20일 페루 리마의 스페인 가문에서 태어나 이사벨 데 플로레스(Isabel de Flores)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는데, 아기가 마치 장미꽃처럼 아름다워 세례명 대신에 로사(Rosa)라고 부르게 되었고, 열네 살 때 이 이름으로 견진성사를 받았다. 후에는 그녀의 일생에 끼친 동정 마리아의 역할 때문에 로사 데 산타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로사는 시에나의 가타리나 성녀를 자신의 모범으로 삼아 어린시절부터 단식과 여러 가지 고행을 하였으며, 수녀원에 들어가기를 원했지만 가족들의 반대로 좌절되자 집안을 돕기 위해서 꽃을 팔았다. 20세가 되었을 때 도미니쿠스 제3회에 입회하여 수도복을 입었는데 머릿수건 속에는 가시관을 쓰고 있었지만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 그 위에는 장미꽃 화관을 얹었다. 또한 정원에 만들어 놓은 은신처에서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애썼으며, 자기 집 방 하나를 진료소로 만들어 가난한 아이들을 돌보아 주고, 노인들을 간호해 주었다. 이러한 진료 활동은 페루에서 사회 사업의 기원이 되었다. 그녀의 활동에서 기적과 초자연적인 일들이 계속 일어나자 사제와 전문가들로 구성된 조사위원회의 조사를 받게 되었는데, 조사관들은 그녀의 활동이 오직 ‘은총’에 의한 것이었음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리마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알고 사랑하였으며, 자신들을 약탈자로부터 구해 주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매일 같은 고행의 생활로 건강을 잃고 전신을 태우는 듯한 고통은 치료를 받아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로사는 모든 고통을 세상 사람의 죄의 보속을 위하여 3년 동안 주께 바쳤으며, 1617년 8월 24일 골고타의 예수의 수난을 묵상하면서 예수의 이름을 3번 부르고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몰려든 군중 때문에 며칠 동안 장례를 치를 수 없었으나 자신이 원하였던 대로 성 도미니쿠스 성당의 지하실에 안치되었다. 지금은 지하 성당 제대 밑에 안치되어 있다. 1668년 3월12일 교황 클레멘스9세에 의해 복자 품위에 올려지고, 1671년4월12일 교황 클레멘스10세에 의해 성인 품에 올려져 페루와 남아메리카, 서인도제도, 필리핀의 수호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